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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6.01 뮤지컬박스 -프로듀서스

뮤지컬 박스 | 프로듀서스

 

언제라도 웃을 수 있어 힘- 낙천은 나의 힘

 

언제 울어야 할 팔자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무엇에든 웃는 것입니다

<‘세빌리아의 이발사’ 중에서>


‘국민 여러분 어떠십니까? 살림 좀 나아 지셨습니까?’

모 방송국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매주 들리는 이야기다. 방청객들은 이 말만 나오면 깔깔거리며 박수를 치는데, 브라운관 밖의 필자는 ‘왜 저게 우스울까?“라며 머리를 부여잡는다. 정말 우스워서 웃는 걸까? 아니면 살림이 나아져서 기쁜 마음에 흔쾌히? 필자가 아둔한 탓일지 모르지만 웃어 보고자해도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도리어 ”살림 힘들어졌다고 약 올리는 거야 뭐야?“ 라며 도끼눈을 뜨게 된다.

물론 주변에서는 ‘개그 프로그램에 눈을 부라린다’며 지청구를 주는 사람이 태반이지만. 하지만 어떻게 웃으랴. 말 그대로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 ‘쥐뿔도 없고’, 하다못해 ‘인생역전 복권’에 ‘꼴찌’라도 붙어봤어야 희미하게라도 웃어볼 것 아닌가. 대선 끝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살림 나아졌느냐’는 성대모사(聲帶模寫)의 반복하려는 건지 원. 게다가 ‘웃기지도 않는데 재미있는 척 웃어주는 바람잡이 방청객’은 얼마나 밉살스러운지. 프로그램 녹화 전에 몽땅 곶감죽이라도 쑤어먹었단 말인가. 젠장.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있어야 말이지.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해 미국은 그야말로 전시를 방불케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미국에 입국하면서 공항에서 마치 범죄인 조사받듯 공항에서 검색을 당해야 했던 분들은 기억하실 것이다. 개국 이래 본토를 공격당한 적이 없는 미국인들이 얼마나 불안해했는지를.

그러나 이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인 10월. 클린턴 전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의원이 뉴욕 한 복판의 뮤지컬 ‘프로듀서스’ 공연장을 방문한다. 그들은 “(프로듀서스 공연을 봄으로서) 뉴욕 시민들과 전 미국국민들에게 (9.11 테러와 그에 이은 탄저균 테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은 계속되며 뉴욕에서의 생활을 계속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공연을 관람한 것”이라고 밝혔다. 여론은 환호를 보냈고.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 같으면 전직 국가원수라는 작자가 국가적 위기 한가운데서 코미디 뮤지컬을 보러갔다면 난리법썩이 나지 않았을까? 아무튼 이 일로 인해 뮤지컬 ‘프로듀서스’는 단순한 히트 뮤지컬이 아닌 ‘미국의 삶’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까지 확대된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조금 호들갑스러운 면이 없지 않고,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미국문화의 산물인 것이 분명하다지만 적어도 ‘국난의 시기에 미국식 삶의 상징’으로 까지 확대될 정도라면 과연 그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지지 않은가?

먼저 뮤지컬 ‘프로듀서스’를 알기 위해서는 ‘멜 브룩 (Mel Brooks)'이라는 인물을 알아야 한다. 이 작품의 대본과 음악을 만든 이 이름은 ’프로듀서스‘의 앞에 반드시 포함되는 이름이다. 그냥 ’프로듀서스‘가 아닌 ’멜 브룩의 프로듀서스‘다. 그동안 많은 뮤지컬을 소개하면서 여러 뮤지컬의 거장들이 언급되었지만 멜 브룩이라는 이름은 처음이라 낯이 설다. 하지만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이름은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못 말리는 드라큐라‘(원제 ’드라큐라-죽어서 행복한 사람) ’못 말리는 로빈 훗‘ (원제 ’로빈 훗 -팬티 옷을 입은 남자들) 그리고 영화 ‘스타워즈’를 패로디 한 ‘스페이스 워즈’를 감독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까지 ‘영 아인슈타인’ 등의 코믹 영화를 통해 우리에게도 꽤 일려진 인물이다. 물론 올드 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배우 앤 밴크로프트의 남편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기도 하다.(영화 ‘졸업’에서 더스틴 호프만을 유혹하던 ‘미시스 로빈슨’이 바로 그녀다)

물론 80년대 후반부터 주커 형제(소위 ZAZ사단)라는 화끈한(?) 영화인들이 ‘치킨파크’(‘주라기 공원’의 패로디), ‘못말리는 람보’(‘람보’패로디), ‘원초적 무기’(‘리셀 웨픈’ 패로디), ‘햄들의 침묵’(‘양들의 침묵’패로디) 등의 노골적인 패로디 영화로 이름을 날리고 있으나 그 배경에는 멜 브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있다. (실제로 영화 ‘햄들의 침묵’에 직접 출연해 ‘원조 패로디’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그 뿐인가. 그는 영화 감독이외에도 시나리오 작가, 작사가, 코미디언, 배우 등 그야말로 ‘코미디에 사도’ 역할을 했다. 일부에서는 그를 그를 구봉성, 배삼룡, 이기동 등의 원로 코미디언으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스타일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의 비트 다케시(기타노 다케시)나 ‘우파적인 찰리 채플린’쯤이 더 적절할 듯싶다.

이번에 소개할 뮤지컬 ‘프로듀서스’는 바로 이 멜 브룩이 1968년 작 동명영화 ‘프로듀서스’의 뮤지컬 버전이다. 당시 텔레비전 오락물의 구성 작가로 명성을 날리던 그는 브로드웨이가 아닌 영화라는 장르를 택해 이 작품을 발표한다. 하지만 영화 ‘프로듀서스’는 평단의 비난 속에 그다지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뿐 아니라 당시 강력하던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의 집단 적인 저항과 마주치게 된다. '여자를 몽땅 다 슈미즈만 입은 멍청이로 취급한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굳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교조적 청교도, 유대인, 마오이스트, 히피, 인종분리주의자, 회교 흑인 운동가, 페미니스트가 등 속이 몽땅 뛰쳐나와 난리법썩을 떨던 당시 분위기에서 이런 복고풍 코미디가 먹혀들었을 리는 만무하다. (멜 브룩은 미국 해병대 출신이다)

실패에 낙심한 그는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화학도로 변신한다. 물론 자신의 ‘끼’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연예계로 돌아와 영화-TV쇼-뮤지컬 등에서 작가, 배우, 제작자, 감독 등을 넘나들며 ‘패로디 원조-미국을 웃기는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게 되었다. 약간 과장하자면 ‘미국 코미디의 대부’가 된 셈이다.

그리고 1998년 데이비드 그리핀에게서 (스필버그-카젠버그와 함께 ‘드림웍스’사를 만든 헐리우드의 빅 프로듀서) ‘프로듀서스’를 브로드웨이 버전으로 새롭게 제작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그것은 뮤지컬 ‘프로듀서스’의 시작이었다.

뮤지컬 ‘프로듀서스’는 2001년 3월 21일 개막 당일에 이미 자그마치 1,400만 달러(약 180억)라는 예약 판매 신기록을 세우는 등 연속적인 좌석매진으로 100달러짜리 티켓이 향후 1년분이 매진되는 신기록을 세웠다. 여기에 2001년 토니상 15개 부분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12개 부분을 ‘휩쓸다 시피’ 거머쥐게 되자 그야말로 ‘신디롬’으로 발전, 뉴욕의 호텔들은 ‘프로듀서스 티킷’을 포함한 호화 상품권을 발매할 정도였다.

눈치빠른 암표상들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법. 이들이 극성을 떨자 제작사는 브로드웨이 역사 이래 최초로 극장 측은 부랴부랴 480달러짜리 스페셜 티킷을 발매한다. 제작사 측은 암표상과 그들이 취하는 부당이익은 그들을 제외하고 어느 누구에도 도움울 주는 것이 아니며 그 이익은 당연히 뮤지컬을 제작한 사람들의 몫이라고 주장하며 말이다. 100달러 짜리 티킷 자체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최상위급 가격인데 480 달러라면 얼마나 큰 가격인지 상상해 보시라. 물론 암표상들은 이 스페셜 티킷을 구해 800달러에 팔았지만. 무엇을 탓하랴. 암표상들의 행위 자체가 바로 이 뮤지컬의 배경과 일맥상통하는 것을.


작품은 브로드웨이 44번가에 자리한 슈버트 극장 앞에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너절한 쇼로 각색한 맥스(초연 당시 나단 레인 분)의 뮤지컬 ‘웃기는 녀석'이 손님이 없어 하룻만에 문을 닫게 된다. (OPENING NIGHT) 브로드웨이 프로듀서인 맥스는 실망에 빠지지만 어쩌랴. 실패가 한 두 번이 아닌 것을. 하지만 그는 결코 병적인 낙관론자(미국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다)답게 스스로를 독려한다. 주머니가 비었어도 말이다. (THE KING OF BROADWAY)

실패한 공연의 결산을 위해 그의 사무실에 회계사인 리오(초연 당시 매튜 브로데릭 분)가 찾아온다. 만화영화 ‘스누피-찰리 브라운’의 찰리처럼 그는 어린시절 사용하던 이불을 볼에 부벼대야만 안정을 찾는 소심증 환자역이다. 영화 ‘고질라’나 ‘형사 가제트’ 등에 출연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매튜 브로데릭이 이불조각을 부비며 땀을 흘릴 때마다 관객의 폭소가 터진다. 천하의 낙천가인 맥스와 소심증 환자의 결합. 그야말로 전형적인 캐릭터 플레이인 셈이다.

아무튼 리오는 공연 회계 장부를 정리하면서 제작비 중 2천 달러가 남아있는 것을 발견한다. 공연이 완전히 파산을 하면서 투자 금액 중 아직 집행되지 않은 (공연이 시작하자마자 망했으므로 대관비 및 출연료, 홍보료 등으로 책정된 금액이 남아있을 수밖에. 물론 투자자들에게는 이익이 나지 않았으므로 수익금을 지불할 책임이 없는 것이고) 것을 발견한다. 결과적으로 공연이 망하는 바람에 맥스에게는 2천 달러를 벌 수 있게 된 것이다.

리오가 남은 금액을 ‘장부상의 경비’로 처리하는 것을 본 맥스는 그야말로 눈이 번쩍한다. 즉 일부러 아주 형편없는 공연을 하나 만들어서 일찍 문을 닫게 하면 쉽게 돈을 번다는 계획이다. 그는 소심하다 못해 삐질삐질 식은 땀을 흘리는 리오를 설득해 200만불의 펀드를 받아 ‘세계최고의 형편없는 작품’을 만든 뒤 ‘계획된 실패’를 해 돈을 벌자는 계획을 세운다. (WE CAN DO IT)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너절한 대본과 가장 형편없는 연출가, 관객이 싫어하는 배우 그리고 반드시 첫날부터 망할 것이 분명한 음악이었다. (I WANNA BE A PRODUCER) 그리고 그들은 아주 적합한 작품을 찾아내고야 만다. 바로 ‘봄날의 히틀러(Springtime for Hitler)"라는 제목의 대본. 내용인 즉 ’히틀러가 근엄한 독재자가 아닌 아주 낭만적인 인물이다‘라는 점을 강조한 것. 이런 얼토당토않은 작품을 쓴 사람은 아직도 연락용 비둘기를 기르고 있는 전직 독일 연락장교출신의 나치주의자다.(IN OLD BAVARIA) 맥스와 리오는 그 남자에게서 이 형편없는 대본을 구하기 위해(정확하게는 공연정지되고 관객들의 저주를 받기에 딱 적합한) 그 시대착오적 파시스트 앞에서 독일식 댄스를 춰가며 아양을 떤 결과 판권을 구입하게 된다. (DER GUTEN TAG HOP-CLOP)

그 뿐인가. 그는 동성연애자 감독을 설득해 ‘히틀러가 강력한 동성연애자로 출연하는 작품’을 만들자고 설득해내는데 성공한다. 게이라는 단어에 명랑한(merry), 쾌활한, 즐거운 이란 의미가 있어서 교묘한 말장난으로 설득한 것이다.(Keep it Gay) 아무튼 이들의 얼토당토 않은 계획은 착착 진행되어 드디어 무대의 막이 오른다.

이들은 초연을 앞두고 ‘Good Luck'이라고 말하면 공연이 망한다는 브로드웨이의 징크스에 따라 만나는 사람마다 ’Good Luck'을 외치며 ‘망하기 위한 노력’을 열심히 한다. (Naver say good luck)

하지만 세상이 어디 사기꾼 마음대로 되던가. 여성스러운 보컬에 야리야리한 몸짓으로 ‘히틀러를 위한 독일의 봄날~즐겨보세요’ 따위의 녹작지근한 노래를 부르고 거의 벌거벗은 코러스 댄서들과 탭을 추고, 무용을 선보이는 히틀러가 등장하자 도리어 관객과 평단이 환호를 하고 나선 것. '히틀러에 대한 완벽한 재해석', '풍자물의 극치', '한 순간도 무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는 등 온통 난리가 난 것이다. 맥스와 리오는 성공 앞에서 낙담을 하게된다. ‘우리 도대체 뭘 잘못해서 성공한거야?“ 하며. 이제는 꼼짝없이 공연을 계속해야 할 상황에 닥친 그들 앞에 경찰이 등장한다. 전 작품의 회계장부조작과 관련되어 이들을 체포하러 온 것.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죄수복을 입고 철장안에 갖힌 그들은 결코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이제는 제대로된 뮤지컬을 만들어 보겠다며 ‘죄수들에 의한 죄수를 위한 죄수의 뮤지컬’인 ‘사랑의 죄수들’의 제작에 들어간다. 감방 안에서 말이다. 그들은 진정한 프로듀서가 되어가는 중이다.

왜 이 작품이 그토록 큰 인기를 끌었을까. 어떤 상황에서도 ‘낙천적’으로 생각하고 힘을 내 앞으로 나아가자는 미국식 발상과 코드가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멜 브룩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뉴욕의 빈민가인 브루클린에서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랐다. 5척 단신의 택시운전사 삼촌이 뮤지컬을 보여 준 뒤로 나는 늘 꿈꾸었었다. 재즈 음악과 반짝이는 불빛 그리고 환호와 웃음. 훗날 이 작품의 대본과 몇 곡의 음악을 만들어 영화를 만들었고 욕을 먹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나의 곡을 정식악보에 옮겨 준 것은 작곡가인 친구였지만 ‘대본-음악 멜 브룩’이라고 써있는 나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제 수십 년이 지나 브로드웨이를 꿈꾸던 9살짜리 브룩클린 소년의 어린시절의 꿈이 이루어졌다”라고 밝히고 있다. 낙천은 어떤 상황에서도 좋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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